和解学の創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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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과정의 한국적 맥락

朴鴻圭(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장)

 

2017년 12월 16일에 와세다대학에서 열린 <화해학 창성을 향하여>라는 국제심포지움에 참석했다. ‘화해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와세다대학이 야심차게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키크오프 행사였다. 나는 고려대학교 평화민주주의 연구소 소장을 맡게 된 이후 연구소 내에 동아시아화해협력센터를 창설하고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역사화해와 상호협력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추진해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와세다대학과의 파트너십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와세다대학이 추진하는 화해학의 창성이라는 신학술영역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 신학술영역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은 내가 정치외교학과 학과장, 정경대학 부학장을 역임하면서 추진해오던 사업의 연속선상에 있다. 나는 이전부터 와세다대학과 학생 교류 및 연구 협력을 진행해왔다. 그 성과로 정치외교학과에서 공동학위제가 운영되고 있으며, 정경대학 차원에서 캠퍼스아시아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번 화해학의 창성이라는 과제를 공동으로 진행함으로써 양교의 진정한 의미의 학문적 교류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아사노 도요미 교수의 문제제기 강연은 한일 역사화해에 관심을 집중해온 나에게 풍부한 이론적 실천적 자극이 되었다. 아사노 교수는 동아시아 지역의 특수성에 기반한 화해학을 지향해야 하고, 각 국가의 국민적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화해학을 창성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주었다. 그리고 화해를 실현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3원칙(正義의 複数性, 국민감정의 상대화, 상호 존중의 태도)을 제시해주었다. 아사노 교수의 문제제기에 적극 동감하는 나는 그가 제시한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적 맥락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갑작스런 변화와 함께 화해와 협력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불신과 증오에 기초한 ‘대립의 정치’를 끝내고, 신뢰와 존중에 기초한 ‘협력의 정치’를 통해 한국이 대면하고 있는 세 가지 과제인 사회양극화 해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일 역사화해를 이뤄주길 바라는 시민적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길은 여전히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그동안의 적대적 대립관계가 남긴 부정적 유산이 크기 때문에 일시적인 화해 움직임이 지속적인 화해과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과거 정부가 행한 화해의 노력들을 재평가하고, ‘지체된 화해’로 인한 감정적 상처를 마주하며, 변화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화해를 위한 상호적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한 1998년부터 2007년까지를 ‘1단계 화해과정’ 시기로 규정한다. ‘1단계 화해과정’에서는 DJ-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선언(1998년), 대북화해협력정책(햇볕정책),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을 통해 식민지배, 냉전체제, 권위주의 통치가 남긴 역사적 유산(역사적 不正義)을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의 관계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된 민주화와 탈냉전이라는 역사적 전환기에 화해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체제 이행 이후 과거의 정권이 저지른 부정의를 바로잡는 노력과 함께 화해와 그 과정에 대한 철학적·이론적·실천적 관심이 급증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1단계 화해과정’은 한국의 민주화 이후 개방된 정치경쟁 속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정권교체의 산물이지만, 이러한 전 세계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1단계 화해과정’을 통해 은폐되고 잊혀진 사건들의 진상이 밝혀졌고, 책임 소재가 밝혀지기도 했으며, 피해자에 대한 복권 및 배상 등이 이루어졌다. 또한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에서도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1단계 화해과정’은 과거사 청산, 남북 관계 및 한일 관계 개선 등이 ‘분절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더구나 냉전구조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고 잔존하고 있는 조건에서 진행된 화해과정은 국내 정치적 측면에서 이념적 대립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결국 정권이 교체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국제적·국내적 차원에서 화해를 위한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화해 정책들이 대부분 단절되면서 화해가 지체되었다. ‘1단계 화해과정’의 산물들은 부정되었고, 화해에 대한 이론의 부재와 실천이 정체되는 ‘지체된 화해’ 현상이 발생했던 것이다.

촛불시위를 통한 2017년 정권교체와 2018년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는 ‘2단계 화해과정’을 여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2단계 화해과정’에서는 지체된 화해 속에서 적대적인 ‘대립의 정치’가 남긴 부정적 결과를 극복하고, ‘협력의 정치’를 통해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중층적 부정의를 실천적으로 해소해야 하는 시기이다. 문재인 정부의 등장 이후 한일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한국은 일본에 투트랙 정책을 제시했다. 평창올림픽 개최를 계기를 남북화해의 물고를 트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더 나아가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 사이에서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여 마침내 북미정상회담이 실행되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2단계 화해과정’이 사실상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국내 정치에서는 ‘적폐청산’과 같은 적대적 공존관계 시대의 용어가 범람하고 있고, 한일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투트랙이 ‘위안부’ 문제로 인해 흔들리고 있으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과정은 여전히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단계 화해과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화해과정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통합적 원칙, 즉 화해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고 이에 기초한 실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1단계 화해과정’의 모델에 대한 비판적 검토이다. 화해의 과정은 화해를 위한 현실적 실천의 측면과 그러한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측면으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1단계 화해과정’에서 과거사 청산, 남북 화해협력, 한일 관계 개선 등을 추진하는 배경이 된 이론적 모델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해과정은 크게 ① 진실 규명과 책임소재의 확정, ②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 ③ 명예 회복과 추모, 피해자 배·보상, 협력사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과거사 청산은 ①에서 ③으로, 한일 관계는 일방적이고 제한적인 사과에서 ③으로, 남북 관계는 곧바로 ③의 협력사업으로 이행한 측면이 있다. 모두 가장 어려운 ②의 과정, 즉 당사자 간의 감정을 치유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①, ②, ③을 단계론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각각의 과정은 화해에 있어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개별 영역이 지닌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공유가 가능한 공통의 기억을 형성하고, 감정을 치유하며, 이를 제도화하는 과정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역사적 부정의와 현재적 부정의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2단계 화해과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지체되고 있는 역사적 부정의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양극화와 다문화로 인한 사회갈등, 기후변화의 위기 등과 같은 현재적 부정의들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체된 역사적 부정의를 해결하는 데 있어, 현재적 부정의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하여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한 민주유공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 및 보상하는 것을 두고, 이들에게 특혜를 주어 역차별을 낳는다는 불만도 존재한다. 이는 사회양극화와 같은 현재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역사적 부정의를 바로잡는 작업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이 약해질 수 있음을 뜻한다. 현재적 부정의를 해결하는 것은 역사적 부정의를 해결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가령 북한이탈주민이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다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남과 북의 역사적 기억의 차이를 화해시키는 과정에 큰 함의를 지닐 수 있다. 따라서 ‘2단계 화해과정’에서는 역사적 부정의와 현재적 부정의를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어떠한 영역에서의 화해 진전이 다른 영역에서의 화해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 있어서의 화해는 갈등이 완전히 해결된 결과 상태를 예측하기 어렵다. 끊임없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그 과정은 남남, 남북, 한일이라는 세 층위의 중층적 문제를 연계하여 풀어야 하며, 게다가 역사적 부정의와 현재적 부정의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와세다대학이 추진하는 <화해학 창성>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화해 과정의 한국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